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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숨겨진 전쟁 영웅의 학살 기록… 한국전쟁 때 백선엽의 1사단,
부역자 색출 명목으로 ‘민간인 학살’ 자행

학살 당시 기억을 회상하는 김석우씨. 한겨레TV <내 손안의 Q> 화면 갈무리
학살 당시 기억을 회상하는 김석우씨. 한겨레TV <내 손안의 Q> 화면 갈무리

“전부 아무 죄 없다고, 그짝도 아무 죄 없는데 고만 오던 길로 데리고 나가서 총으로 쏴서 묻어놨어.”파워볼엔트리

김석우(82)씨가 열두 살 때를 기억하며 반복해서 내뱉는 한마디가 있다. “아무 죄 없다.”

1950년 9월28일 경북 상주 일대를 점령한 인민군과 그 동조자들은 국군이 들어오자 북쪽으로, 산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김석우씨 가족은 그대로 마을에 남았다. “인민군에 가담한 사람은 다 내뺐고 우린 아무 죄 없잖아! 그래서 여기 남아 있었다고.” 죄가 없으니 괜찮을 거라는 당연한 믿음은 곧바로 부서졌다. 마을을 점령한 국군은 무작위로 마을 청년들을 색출했다. 김석우씨의 6촌 형님 김철원씨와 그의 친구 이태하씨는 그길로 잡혀가 화를 당했다. “저기 저 철로 밑에서 쏴서 바로 묻어놨어. 지나가는 개가 보고 난리를 피우는 통에 발견됐지.”

진실화해위원회에서도 증언

주검이라도 찾아서 다행이었다. 다른 날 끌려간 7촌 형님 김형문씨와 5촌 형님 김형우씨는 주검도 찾지 못했다. 김석우씨가 증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2010년 조사 활동 뒤 해산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에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에 대해 증언했다. 하지만 그런 외침에도 국가와 가해자에게 어떠한 사과의 말도 듣지 못했다. “인민군에 가담했다고 해서 죽였잖아. 그러니 국가가 사과하겠어.” 김석우씨는 사과받지 못하는 이유를 억울한 죄에서 찾고 있다. 도대체 누가 김석우씨 가족을 죽인 걸까?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이 벌어지자 백선엽의 1사단은 서울로 진격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전쟁 최대 치적 중 하나로 불리는 ‘다부동 전투’를 시작으로 상주를 거쳐 속리산 인근 충북 괴산·보은·청주 일대에서 토벌 작전을 벌였다. 이때 백선엽 부대는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팀장을 맡았던 신기철 인권평화연구소장은 상주 민간인 학살 사건을 조사했고, 그 학살이 백선엽의 1사단이 저지른 것임을 밝혔다. 신 소장의 말이다. “9월24일 백선엽이 이끄는 1사단의 11·12·15연대가 상주와 괴산·보은·청주 이렇게 나눠 주둔하면서 열흘 동안 토벌 작전을 벌였다. 이 토벌 작전은 인민군에 점령된 지역에서 인민군에 가담한 부역자를 색출하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그 토벌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이 학살됐다. 그렇게 주둔한 곳에서 백선엽 부대는 마을 사람들에게 강간과 학살을 범했다.”

<한겨레>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양민피살자신고서’ 78건에는 백선엽 부대에 의해 희생된 상주 유족들의 억울한 사연이 담겨 있었다. 이 신고서들은 1960년 4·19 이후 유족들이 4대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이 신고서에는 백선엽의 1사단 소속 15연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증언이 자주 나온다.

“1950년 10월5일 상주군 청리면 수상리: 아군이 복귀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좋아 음주를 하였는데 만취한 상태에서 억울함을 호소조차 못하고 총살을 당하고 말았다.”

“1950년 9월25일 상주군 공성면 장도리: 피난 못 간 탓에 인민군들에게 잡혀 약 20일간 여성동맹이라는 곳에 가입되어 형식적으로 지내오던 중 아군이 북진하자 바로 잡혀가 3~4일간 가진(갖은) 욕(윤간)을 당하고 백사장에서 총살당하였다.”

1960년 4대 국회에 제출된 뒤 국회에 전산화돼 보관된 ‘양민피살자신고서’. 한겨레TV <내 손안의 Q> 화면 갈무리
1960년 4대 국회에 제출된 뒤 국회에 전산화돼 보관된 ‘양민피살자신고서’. 한겨레TV <내 손안의 Q> 화면 갈무리

백선엽 “이 안에 있는 것은 다 적이다”

신기철 소장은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4·19 혁명 때야 비로소 진실규명을 촉구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4대 국회에서 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지금 남아 있는 자료는 그때 피해자 유족들이 신청한 기록이다. 하지만 5·16 쿠데타가 일어나는 바람에 진상규명은 좌절됐다”고 설명했다.파워볼게임

백선엽은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그가 저지른 학살의 기록은 외면받아왔다. 그러나 기록보다 선명한 기억은 당시 죽음을 잊지 못한다. “많이 죽었지. 어느 동네 할 거 없이 몇 명씩은 다 죽었어.”(김선우씨) 그 기억에서 다 설명되지 못하는 더 많은 억울한 죽음을 짐작할 뿐이다.

상주 학살 1년3개월 만인 1951년 12월, 백선엽 부대는 사단에서 군단으로 규모가 커졌다. 그만큼 학살 규모도 커졌다. 12월부터 두 달 동안 백선엽이 이끄는 ‘백선엽 야전 사령부’, 일명 ‘백야사’의 2개 사단은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 토벌 작전을 실시했다. 지리산을 포위해 점점 포위망을 좁히는 작전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됐다. <한겨레>에서 2011년 입수한 백야사의 작전 참모(공국진 전 준장)의 증언록을 보면 당시 이들이 주민을 바라본 인식이 드러난다. “지리산이 4개 도 9개 군이다. 9개 군 주민이 20만이다. 이 양반(백선엽)은 이 안에 있는 것은 다 적이다. (중략) 그래서 공격을 개시하고 아이들 부녀자들을 다 적으로 만들고 포로로 오는데….” 백선엽은 민간인 사살 가능성을 스스로도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백야사의 전과가 (사살 5800명, 포로 5700명) 당초 예상했던 빨치산 숫자 4천 명의 무려 3배가 넘었다. 공비들에 포섭된 비무장 입산자도 많았다”고 밝혔다.(<군과 나>)

이때 경남 산청의 조재현(79·당시 8살)씨는 할아버지와 숙모 그리고 젖먹이 사촌동생을 잃었다. “우리 숙모와 젖먹이 사촌동생도 총살당했어요. 그렇게 잘생긴 애가 없는데… 참 아깝죠.” 조씨는 지리산 인근에 묻혀 있던 할아버지와 숙모 그리고 사촌동생의 유해를 수습해 고향 마을 뒷산에 묻었다. 그리고 평생을 민간인 학살 피해 유족으로서 배상받기 위해 싸웠다. 2016년 마침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도 받아냈다. 하지만 국가 배상도 조재현씨의 억울한 마음을 풀지는 못했다. “국가에서 배상을 받았지요. 일평생을 부역자의 유족이라는 오명을 쓰고 살아왔는데 성인 1명당 4천만원….”

일평생을 부역자 오명 썼는데

주민들을 적으로 바라보는 토벌 방식은 한국전쟁에서 낯선 군사전략이 아니다. 신기철 소장은 “백야사는 1951년 말~1952년에 활동했지만 이전에 이미 수많은 토벌 작전이 같은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이런 일을 (백선엽) 사령관이 몰랐다고 얘기할 수 없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휘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인민군에 가담도 안 했는데 이리 죽은 기라. 그러니까 억울한 거지.”(김석우씨) 민간인 학살의 책임자로 지목된 ‘전쟁 영웅’ 백선엽은 사망했지만, 피해자 유족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살아가고 있다.

쌍용자동차 [촬영 이충원]
쌍용자동차 [촬영 이충원]

(서울=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본사와 직접 고용계약을 맺지 않은 자동차 영업사원이 고객에게서 받은 차값을 빼돌렸다면 본사가 일부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파워볼게임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자동차 구매자 A씨가 쌍용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5년 9월 쌍용차의 한 대리점 영업사원인 B씨를 통해 자동차를 할부로 구매했다. 그러나 차후에 할부 금리가 너무 높다고 판단해 일시불로 지급 방법을 변경했다.

B씨는 자신에게 차값을 일시불로 보내주면 할부금을 대신 상환해줄 수 있다며 송금을 요구했고 A씨는 B씨에게 차값 3천280만원을 모두 송금했다.

그러나 B씨는 받은 돈을 모두 개인적인 용도로 써버렸고 A씨는 쌍용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은 본사는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며 쌍용차의 손을 들어줬다. 쌍용차는 영업점과 대리점 계약을 했을 뿐 영업사원인 B씨와는 아무런 법률관계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2심은 쌍용차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B씨가 형식적으로는 영업점과 계약을 맺고 자동차를 팔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쌍용차의 지휘·감독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A씨가 쌍용차에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B씨의 개인계좌로 차값을 송금했다는 점에서 A씨의 책임도 있다고 보고 쌍용차의 책임을 50%로 제한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2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여민합동법률사무소 류제화 변호사는 “앞으로 유사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은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자동차 회사에 직접 책임을 물어 안정적으로 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소송 과정에서 대리점 계약의 주요 내용이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보여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손흥민이 쏘아 올린 득점 ‘과연 자책골일까?’

손흥민의 리그 12호 골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2019/20 프리미어리그 37 라운드 레스터시티전에 선발로 나선 손흥민은 상대 골문을 열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전반 6분 기회가 왔다. 손흥민은 자신이 좋아하는 위치에서 골문 오른쪽 구석을 보고 공을 강하게 감아 찼다. 손흥민의 슈팅은 레스터 시티의 수비 저스틴을 맞고 꺾인 뒤 골망을 흔들었다. 경기 직후 케인 도움에 손흥민 골이 인정됐다.

10여 분이 흐른 뒤, 기록이 변경됐다. 제임스 저스틴의 자책골이 된 대신 손흥민의 12호 골은 사라졌다. 3경기 연속골에 도전했던 손흥민의 노력도 함께 사라졌다.

손흥민의 골은 왜 사라졌을까. 골을 기록하는 판정단의 몫이긴 하지만, 손흥민의 골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은 자책골에 대한 판정이 매우 주관적임을 나타내는 반증이기도 하다.
축구에서 가장 모호한 규정 가운데 하나는 자책골 여부에 관한 판단이다.

자책골 여부를 판정하는 규정 자체가 없다고 보는 편이 맞지만, 그래도 자책골이 아닌 공격수의 골을 인정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는 먼저 공격수의 슈팅이 골대를 향했느냐가 첫 번째 관건이다. 경기장 측면이나 구석에서 올라온 크로스나 코너킥, 프리킥 상황에서 수비수가 공을 건드려 공의 진로를 자기편 골대로 바꾼 경우엔 자책골이 명백한 경우다. 이 경우 수비수가 공을 걷어내려다 명백히 실수를 저질러 자기편 골대에 넣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뒷받침돼야 한다.

손흥민의 슈팅 순간을 보면 오른쪽 골문 구석을 노리고 발목을 강하게 돌려 감아 차는 모습이 명백하다. 골을 노린 슈팅이 분명했다. 공격수는 또, 앞에 수비가 포진하고 있을 때, 자신의 슈팅이 공격수 몸에 맞고 굴절돼 골이 되는 경우까지 의도할 때가 있다.

■ ‘해버지’ 박지성도 자책골 논란… 리그 데뷔골 늦춰져.

우리나라 국외파 선수에 대한 자책골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14년 전 ‘해버지’ 박지성의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에 대한 논란 또한 뜨거웠다. 박지성은 2006년 2월 4일(현지 시간) 2005~2006 프리미어리그 시즌 풀럼전에서 ‘사실상’ 리그 데뷔골을 기록했다.

전반 6분, 게리 네빌이 오른쪽에서 낮게 깔아준 크로스를 받은 박지성은 페널티 구역 안 우측에서 골대를 노리고 슈팅을 쏘아 올렸다. 이 공은 수비수 보카네그라의 몸에 맞고 굴절돼 골문에 빨려 들어갔다. 현지 중계진 모두 박지성의 골을 외친 이 득점은 카를로스 보카네그라의 자책골로 기록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때에도 많은 축구팬은 ‘골문 안으로 들어가던 공이 수비 몸에 맞고 꺾이며 들어갔을 뿐’이라거나, ‘ 수비의 실책이 아니라, 그저 공이 날아와 몸에 맞고 들어간 것인데 자책골이 아니다.’ 라며 격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2005년 12월 21일 버밍엄과의 칼링컵 8강전에서 잉글랜드 무대 데뷔골을 기록했던 박지성의 리그 첫 득점은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아스널전에서야 기록될 수 있었다.

■손흥민 리그 12호 골 되찾을 수 있을까?

손흥민의 리그 12호 골을 되찾을 방법은 없을까. 자책골이냐 공격수의 골이냐 판단 여부가 골 판정단의 주관적인 의견인 만큼 경기 후 팀은 이에 대한 기록 정정을 요청할 수 있다. 팀의 이의 신청에 따라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여러 차례 득점 기록에 대한 판정이 번복된 사례가 있다.

토트넘이 프리미어리그에 득점자 변경을 요구하는 절차를 거쳐 손흥민의 골이 인정된다면
손흥민은 리그 12호 득점과 공격 포인트 21개, 한 시즌 개인 최다 공격 포인트 30개(시즌 19골)를 달성할 수 있다.

고소 협박하며 극단 선택 권유
실종 신고로 다행히 목숨 건져
법원 “감정적 학대..일탈 아냐”

[뉴시스]그래픽 윤난슬 기자 (뉴시스DB)
[뉴시스]그래픽 윤난슬 기자 (뉴시스DB)

[서울=뉴시스] 옥성구 기자 = 연인 사이던 여성 청소년에게 고소할 것처럼 협박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권유한 뒤 이를 방조했다가 미수에 그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이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1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손동환)는 최근 자살방조미수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모(29)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또 사회봉사 160시간과 추징금 9만원을 명령했다.

김씨는 지난해 6월 인터넷 카페에서 만나 교제했다가 헤어진 피해자 A(17)양에게 ‘혼인빙자로 형사·민사 청구할 거다’라고 협박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권유한 뒤 이를 방조했다가 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김씨는 자신과 헤어지고 얼마 뒤 A양이 새로운 남자친구와 찍은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자 화가 나 ‘커플링을 달라’며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A양을 불러 여러 차례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고소한다는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내 A양으로 하여금 공포심에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빠지게 했고, 김씨는 실제 극단적인 선택까지 권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A양이 이에 동의하자 김씨는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펜션에서 A양과 함께 수면제를 먹은 뒤 냄비 위에 활성탄에 불을 붙여 일산화탄소 중독 및 질식 등으로 사망에 이르고자 했다.

하지만 A양의 새로운 남자친구가 실종 신고를 했고,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출동한 경찰관에 의해 A양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아울러 김씨는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을 SNS를 통해 판매하는 광고 글을 게시하고, 실제 이를 판매하거나 판매미수에 그친 혐의도 받는다.

재판부는 “자살미수방조 범행의 대상이 여성 청소년”이라며 “그 내용도 터무니없는 이유로 A양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고 감정적으로 학대하다가 동반 자살을 핑계로 자살을 유도한 것으로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씨가 과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로 벌금형과 징역형 전과가 있음에도 또다시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 사건 범행에 나아갔다”면서 “수면제를 광고를 통해 판매까지 하는 등 이 사건 범행이 단순한 일탈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김씨가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다”며 “A양에게 합의금 1000만원을 지급해 합의했고, 판매한 졸피뎀의 양이 많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앵커>

2군 선수들의 일탈과 폭력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SK 구단이 추가 은폐 의혹에 휩싸였습니다. 1군 주축 선수들이 2군 선수들에게 얼차려를 줬다는 진술을 KBO가 확보했습니다.

유병민 기자입니다.

<기자>

KBO는 지난 5월 말 발생한 SK 2군 선수들의 음주와 무면허 운전, 폭력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1군 주축 선수들이 일탈행위를 한 선수들에게 얼차려를 줬다는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일탈행위를 저지른 선수들이 구단 자체 징계를 받기 위해 인천 홈구장에 왔을 때, 1군 선수들이 이들을 불러 단체 얼차려를 줬다는 겁니다.

이런 내용은 SK 구단이 KBO에 제출한 사건 경위서에는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SK 구단 측은 고참 선수들의 훈육으로 파악했다며, 이 사안을 KBO에 구두로 보고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2군 선수단의 심각한 일탈 행위와 폭력 사건을 구단 자체 징계로 덮으려다 한 달이 지나서야 KBO에 보고한 SK 구단이 주축 선수들이 연루된 사안을 또다시 은폐하려 한 건 아닌지 의심받고 있습니다.

SK가 KBO에 제출한 경위서는 물론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도 1군 주축 선수들의 얼차려 관련 내용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KBO 관계자 : 해당 경위에 확인할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은 별도로 확인 예정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KBO는 모든 의혹을 추가 조사해 조만간 상벌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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